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시지각과 인식의 문제를 주로 다뤄온 작가 송민철에게 원은 기본적인 도형의 하나로서 작업의 중요한 소재이자 동기로 작용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원은 시작이자 끝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얼핏 개의 원이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원보다 훨씬 많은 수의보이지 않는원이 안에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일이 가능할까. 보이지 않는 나머지 원을 보기 위해 우리는 눈을 크게 뜨기보다는 작가의 의도에 기울여 그의 조형어법을 파악하고 얼마간의 상상력을 동원해야 것이다.  
천고가 높은 중앙 벽면에 커다란 원이 있다. 그러나 원은 온전한 형태가 아니다. 둘레에 다섯 개의 점을 찍고 사이를 각각 연결해 생긴 다섯 개의 호만 남은 가운데 부분은 비어있다. 다섯 개의 원호가 검은색이고 가운데 비어있는 오각형이 벽면과 같은 흰색이어서 우리는 호를 먼저 보게 되지만, 색이 반대로 되어 있다면 호가 아닌 오각형을 먼저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지각 과정에서 무엇을 형태(figure) 보고 무엇을 배경(ground)으로 것인가는 상대적이며 지각의 결정은 총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슈탈트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작가는 다른 전시에서 오각형이 먼저 형태로 떠오르도록 반대로 색을 칠하거나 다섯 개의 원호들을 수평으로 나란히 배열한 있다. <같은 다른 (equivalent other circle)>이라는 제목이 작가의 의도를 말해준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하나의같지만 다른 숨어 있다. 앞서 다섯 개의 원호를 품은 커다란 원이 평면이 아닌 입체라는 가정 하에 부피를 계산하고 부피의 크기를 전시장 공간으로 환산하여 해당 높이만큼 벽면에 둘러 색을 칠한 것이다. 원이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모든 점들을 이은 곡선이라면 구는 삼차원 공간의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의 궤적으로 둘러싸인 입체이므로, 원과 구는 평면과 입체의 차이일 모두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을 이은 둥근 형상이다. 원에서 구로, 구에서 직육면체로 작가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옮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1미터 가량의 띠로 둘러진 회색 벽을 바라보면 커다란 구에서 쏟아진 물이 전시장 공간 안에 차올라 안에 하반신을 담그고 있는 이상한 기분이 들게 된다. 구에서 쏟아진 물이 직육면체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담기는 것처럼, 지구의 물은 액체뿐 아니라 빙하나 수증기로 계속해서 상태를 바꾸어갈 총량이 보존된다는 점에서 모두같은 다른 이라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우 하나의 보이는 원과 그와 관련된 보이지 않는 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머지 보이는 개의 역시 여러 개의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원들과 관련되어 있다. 번째 원은 지름의 크기가 다른 여러 색의 원들로 이루어져 있어 언뜻 양궁의 과녁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어색하다. 보통의 과녁과 반대로 중앙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원의 면적이 좁아지고 색의 순서 역시 흰색부터 검정색, 파랑색, 빨강색, 노란색까지 역순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양궁 과녁에서 동일 점수를 가리키는 각기 다른 부분의 면적을 계산하여 순서를 반대로 재배치하였다. 바뀐 것은 순서일 뿐이지만 중앙으로 이동한 흰색이 가장 중요한 부분처럼 여겨지고 가장자리로 밀려나 띠처럼 얇아진 노란색 부분은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게 되어 원래 과녁이 주는 긴장감은 사라지고 만다. 게다가 벽에 걸리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온 그것은 이제 이상 과녁이 아니라 여러 색의 동심원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원형 오브제일 뿐이다. 제목 그대로 <같은 다른 > 셈이다
나머지 보이는 개의 원은 회화다. 작품 모두 작가가 직접 제작한 원형 캔버스 위에 그려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성 합판의 규격으로 가장 원형의 캔버스를 만들기 위해 그는 무지개를 반으로 자른 형태 개를 연결했고 그렇게 만든 도넛 모양의 원형 위에 천을 잡아당겨 고정했다. 과정에서 관련된 여러 작업을 구상하게 되었고 합판의 남은 원형 부분을 사용해 다양한 설치 작업을 선보인 있다. 사각과 원은 가장 기본적인 도형으로서 무수히 많은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그의 주된 관심은 자신이 만든 원형 캔버스와 위에 그려질 그림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직접 만든 원형 캔버스는 2차원 평면으로서 회화의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동시에 사각형이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일반적인 회화의 단순한 재현을 넘어 자체 원형의 사물이 있었다. 마치 캔버스의 사각 형태를 이용한 재스퍼 존스의 <깃발(flag)>처럼 말이다. 대표적인 작업이 미러볼 모양의 <그곳에 걸려야 하는 그림(the painting to be taken there)> 연작이다. 무수히 많은 작은 사각형의 거울로 이루어진 형태의 미러볼은 평면의 거울처럼 사물을 그대로 비추지는 않지만 그것이 걸린 공간의 사물들을 반사한다. 작가는 특정 공간에 실제 미러볼을 설치하고 사진을 찍어 모습을 원형 캔버스에 그렸다. 사진은 회화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에서 기록 역할을 뿐이고 중요한 것은 공간을 비추는 미러볼과 미러볼을 원형 캔버스에 옮긴 그림이다. 미러볼은 사진이 그러한 것처럼 그곳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지표(index)’ 성격을 지니지만, 그러한 모습을 옮겨 그린 작가의 그림은 여전히도상(icon)’이다. 그러나 도상은 일반적인 회화처럼 사각 안에 실제 대상을 닮게 그린 완결된 재현 이미지가 아니며, 원형의 캔버스에 원형의 미러볼을 그림으로써 자체가 실제 미러볼을 닮은사물이자 동시에 재현이미지 된다. 따라서 지표와 도상의 성격을 지닌 미러볼 그림은 실제 미러볼이 있었던그곳에 걸려야 하는 그림 된다. 한편 다른 회화 <공간 안의 호들(Arcs in Space)> 투명한 개와 하나를 겹쳐서 찍은 사진을 원형의 캔버스에 옮겨 그린 그림이다. 그림은 개의 구가 겹쳐지면서 생긴 무수히 많은 원과 원호, 거기에 사진이 찍힌 공간의 모습이 간섭되어 언뜻 정체를 없는 하나의 원형 오브제처럼 보인다. 그것은 사진에 찍힌 모습을 보고 그린 재현 이미지임에도 <그곳에 걸려야 하는 그림> 달리 안에 그려진 수많은 원과 원호로 인해 구체적 형상을 알기 힘든 일종의 추상화처럼 느껴진다.
회화는 송민철의 작업 전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유학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이력에서 있듯 그의 작업은 회화에서 시작했고 설치 작업의 출발점 역시 원형 캔버스였으며 현재도 회화의 본성을 되묻는 회화를 계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사진, 영상, 설치, 개념미술 등으로 작업 세계를 넓혀 왔지만 중심에는 언제나 회화가 놓여 있었던 셈이다. 원형과도 같은 작품인 <네가 그림(negative painting)>(2005) 대한 언급이 그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는 도움이 것이다. 영상 속에서 작가는 본인으로 보이는 물구나무 사람의 모습을 캔버스에 그리고 있다. 그림에 집중하다보면 일정 시간이 지나서야 영상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과 주변 이미지 모두 음양이 반전되었음을 알게 된다. 영상의 음양이 반전된 것이라면 제대로 보이는 그림은 실제로 반전된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사진의 음화(negative) 필름을 보면서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겨 그리는 과정을 영상에 담음으로써 영상 안에서만 제대로 보이고 현실에서는 음양이 반전된네가 그림 만들어낸 것이다. 영상 중간에 물구나무 자화상 캔버스 위아래를 바꾸어 놓고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을 포함한영상 전체의 상하를 반전시킨 부분에서는 혼란이 더욱 가중된다. 2000년대 중엽 유학 당시 제작한 여러 영상에서 작가는 이처럼 이미지의 음양을 반전시켜 관객의 시지각과 인식의 불일치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계속된 자각 없이 단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현상을 제대로 파악할 없음을 깨닫게 한다
송민철의 작업에 자주 등장하는원호 보이는 너머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보게 하는 대표적인 소재라 있다. 원둘레에서 점이 한정하는 부분인 호는 자체로는 온전한 원이 없지만 언제나 온전한 원을 떠올리게 한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호는 언제나 원둘레에서 나머지 부분의 호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인 <Arc in Space–GMoMA> 그러한 원호의 특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작가의 작업 세계 전반의 특징을 드러낸다. 작가는 경기도미술관 입구를 이루는 얇은 원호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에서 나머지 보이지 않는 커다란 부분의 호를 상상하였고, 호가 언제가 하나의 원이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조각 설치를 시도했다. 호를 품은 원형 패널 위에 미술관 전시장 공간 모형을 올려 만든 조각품은 전체가 동일한 재료와 단일한 색으로 데다 바닥에 놓지 않고 벽에 걺으로써 제목이 아니라면 미술관을 상징화한 조각품이기보다 책장이나 장식장에 가까운 가구로 인식되기 쉽다
하나의 원호가 보이지 않는 나머지 다른 호를 떠올리게 하듯, 어느 하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송민철 작가의 일관된 작업 성향이라 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언제나 다른 어떤 것들 사이에 놓여 있으며 하나로 단정 지어 말할 없다. 점과 사이의 , 선과 사이의 , 면과 사이의 공간으로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내고,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사진과 회화의 본성을 염두에 작품은 영상으로 완성된다. 벽에 걸릴 것은 바닥으로 내려오고 바닥에 놓일 것은 벽에 걸린다. 게슈탈트 이론에 동조하면서 메를로-퐁티는지각적어떤 항상 다른 어떤 사이에 있으며 항상()’ 일부를 형성한다 말한 있다. 무엇을 보고 인식하는 일은 단순히 자극에 대한 점괄적 반응의 집합이 아니라 형태의 전체적인 통일과 구조의 파악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송민철은 이러한 지각과 인식의 특징을 시각예술의 안에서 끊임없이 일깨우며 사람들이 당연시 여기는 모든 현상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신혜영 | 미술비평



1) <같은 다른 >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선보였던 작업에서 작가는 MDF 합판 위에 색을 칠하고 벽에 거는 방식을 취했으나, 이번 경기도미술관 전시에서는 보다 원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검은색 시트지를 사용해 월드로잉 형식으로 제작했다

2) 사실상 물은 자체 작가에게 의미 있는 소재다. <같은 다른 > 오각형과 동일한 모양의 거울을 전시장 중앙 바닥에 놓인 바둑판 위에 수직으로 세운 작품의 제목은 <물의 >이다. 다른 전시에서는 바둑판의 격자선을 따라 홈을 파고 안에 실제 물을 채우기도 했다.

3) 메를로-퐁티『지각의 현상학』류의근 (), 서울문학과 지성사, 2002, pp. 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