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철: 반응하는



고동연(미술사가)



《반응하는 (Responsive Eye)》은 1965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옵아트(Op Art) 전시 제목이다. 전시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단순한 패턴을 사용해서 눈의 착시효과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총망라되어서 포함되었다. 특히 옵아트는 관객의 시각적인 반응에 보다 주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기하학적인 추상과는 괘를 달리하였다. 보는 이의 즉각적인 인지 반응뿐 아니라 착시적인 효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1960년대 관객참여적인 예술의 흐름을 반영하였다. 작년 독일 문화원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송민철의 리뷰에반응하는 이라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시의 제목을 인용한 것도 때문이다. 송민철은 눈의 위력과 동시에 한계를 체계적으로 다룬 작업들이 흔치 않은 국내 미술계에서 착시, 눈속임, 재현의 문제를 꾸준히 탐구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예를 들어 송민철의 < 개의 >(2013) 비롯하여 <반거울(Half Mirror)>(2014)이나 <코너거울(Corner Mirror)>(2015) 등은 오랫동안 신경과학자들이 고민하여 인간이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의 눈은 우리를 속이는가의 중요한 쟁점을 다시금 점화시킨다. 게다가 특정한 공간의 코너를 활용하고 관람객의 신체적인 이동을 통해서 효과를 실제 공간에서 관객들이 경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시각과 인식의 관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방편인 셈이다



작가는 초기 작업부터 꾸준하게 인식의 문제를 다루어 왔다. 독일 유학시절 제작한 <네가 그림>(2005) 시리즈에서부터 2008 영상작업 <일상> 이르기까지 그의 회화 작업들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것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테마로 삼는다. <네가 그림> 전신상의 자화상을 그리는 장면을 네거티브로 녹화하고 결과적으로 네거티브와 포지티브가 병치되어서 나타나게 만든 영상작업이다. 여기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리얼리티와 그려지고 있는 다른 리얼리티, 혹은 물질적인 흔적에 해당하는 자화상은 동일한 공간에 병치되어 있으나 실상은 시간차를 두고 기록된 독립된 개의 리얼리티들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일상> 방으로 들어와서 바나나를 먹는 과정을 기록하고 텔레비전에서 역방향으로 재생해서 만든 작업이다. 작가는 역방향으로 흘러가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바나나를 먹는 모습을 재촬영하였고 마지막 촬영분( 역순으로 흘러가는 기록물을 바라보는 텔레비전 작가의 모습) 역순으로 재편집하였다. 결과적으로 동일하고 일상적인 리얼리티는 텔레비전 안과 , 그리고 시간적 추이에 따라 달리 재생, 기록되게 된다. 또한 결과적인 기록물은 서로 다른 충위들을 내포하게 되고 관객들은 같은 사건이 앞으로, 혹은 역순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각기 다른 층위의 재현적인 리얼리티들이 어떻게 서로 연관되는지를 관객들이 정확히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대신 지나친 반복성에 따른 전체적인 리얼리티의 모호함, 부조화, 어색함 정도를 순간적으로 인지할 뿐이다. 영상 속에서 동일한 인물이 방을 들락날락거리고 등장인물이 들고 있는 바나나라는 모티브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인가 간섭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짐작해보게 된다. 혹은 설치물에서 거울의 한쪽 면에서 반원의 형태가 반사된 상태에서 거울의 건너편에 위치한 원의 형태는 반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편 반원의 형태가 반사되지 않은 거울 뒤쪽의 형태(거울 반원의 거울상이 거울에 가려진 뒤쪽의 형태) 유사하리라는 사실을 전체 역학적인 구조에 비추어보아 짐작해 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관객은 일차적으로 보이는 것에 반응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무엇인가 서로 다른 층위의 리얼리티, 설치의 측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간단한 눈속임 뒤에 내가 그것을 그러한 방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되물어보게 된다. 최근 작업에서 작가가 주로 사용하고 있는 거울과 PVC 판넬 등의 재료는 그러한 관객과의 시각적인밀당 효과를 가중시킨다. 좁은 통로의 갤러리 복도에 설치된 <Flat Eclipse> 직사각형의 판넬을 반원과 1/4 형태로 제단하고 복도의 공중과 바닥에 설치한 작업이다. 철핀으로 천정과 바닥에 설치된 반원과 1/4원을 통하여 뚫린 다른 반원이나 1/4원의 형태가 암시된다. 마찬가지로 네가티브에 해당하는 반원과 1/4형태의 원에 의하여 검게 칠해진 포지티브 면들이 구획되고 정확한 대칭 효과를 만들어내게 된다. 물론 여기서 반원의 크기가 배치된 방식은 작가에 의하여 철저하게 설치될 공간의 평수와 설치할 원의 면적으로 계산해서 끼어 넣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 설치된 것과 비어 있는 것들 간의 상호작용, 혹은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의하여 새로운 형태가 탄생되고 관객에게 파악된다. 그의 작업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지 과정이 시간차를 두고 진행될 수밖에 없게 된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어느 한쪽의 형태나 영상을 점차로 그것의 반대항을 상상하고 서로 비교해 가면서 감상하는 방식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비교와 결합의 과정을 통해서만이 전체적인 형태가 우리의 눈과 머리, 일차적인 감각, 직관, 인지의 과정을 통하여 파악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만큼 변화무쌍한 매체와 설치 방식, 스케일이 앞으로도 도입될 있을지의 여부이다. ‘이라는 것은 아둔하고 불완전하기는 간사하다. 때문에 한번 작가가 만들어낸 체계에 익숙해지게 되면 다음부터는 자동적으로 문제를 풀어버릴 있게 된다. 그러할 경우 착시적인 효과에 놀라고 신기해하고 하는 관객들의 기쁨도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송민철 작가가 관객과의 쫒고 쫒기는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끝없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